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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행위를 통해 역사한다

글쓴이 : 아틀란타제… 날짜 : 2018-11-01 (목) 23:25 조회 : 71
설교일 : 2018년 10월 28일
설교자 : 서삼정 담임목사님
본문말씀 : 야고보서 2:14-26


믿음은 행위를 통해 역사한다. 야고보서 2:14-26
  
믿음은 행위를 통해 역사한다.
나는 지난 주일 예수님을 좀 더 깊이 알자고 말씀을 전했다.
또 그전 주일에는 예수님을 위해 살자고 말씀을 전했다.
많은 분들이 은혜 받았다고 했다. 요즈음 듣기 힘든 귀한 말씀을 들었다고 했다.
나는 감사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말씀에 은혜를 받았으면 순종이 따라야 한다.
  
믿음은 믿음 자체가 이미 증거하고 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다. (히 11:1)
우리의 마음 속에 그 무엇으로도 지울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성령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그 믿음 자체가 확실한 증거가 된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가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구원도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므로 받는 것이지 단순히 아는 것 만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니느리”.
마음으로 믿을뿐 아니라 입으로 시인하는 행위가 따라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세례식을 행한다.
세례가 믿음을 공적으로 나타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영접기도를 한 것으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 갈수 있다고 하셨다.
이 말씀의 뜻은 예수님을 주 라고 말하는 자는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결코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참 믿음에는 믿음의 행위가 따른다는 말이다.
믿음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하나이지 별개의 것이 아니다.
  
또한 불신과 불순종 역시 동전의 양면과 같다.
모든 죄의 뿌리는 불순종 이라고 한다.
그러나 불순종의 뿌리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불신이다.
왜 불순종하는 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아담 하와가 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 먹었는가?
하나님 말씀을 전적으로 믿지 않고, 나아가서는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순종의 뿌리가 무엇인가? 바로 믿음이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하나님 자신을 믿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게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쌓을 곳이 없도록 축복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믿는 사람중에 그 말씀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을 확실히 믿는 자만이 온전한 십일조를 바칠 것이다.
약속하신 축복은 단순히 바치는 것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기 때문에 받는 것이다.
  
이것은 같은 말 같지만 아주 다른 말씀이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이미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준비 되어 있다.
그 축복을 받는 것은 믿음으로 받는다.
그런데 진정한 믿음은 행위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믿음에는 반드시 역사가 있다.
성경은 “네 믿음대로 되라” 고 하셨고
또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믿는자는 많은데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많이 보지 못한다.
왜 그런가? 믿음에 따르는 행함이 없기 때문이다.
참 믿음에는 반드시 행위가 따른다.
참 믿음의 행위에는 역사가 나타난다.
  
1.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이 말은 야고보서 전체의 핵심이 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피상적으로 보면 우리의 행위만 강조하는것 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말씀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자들에게 진정한 믿음의 행위를 보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위 자체가 강조가 아니라 행위를 통한 참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믿음으로 살아야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누가 중병이 들었는데 어떤 분이 좋은 약을 소개했을때 그것을 확실히 믿는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 약을 구해서 먹을 것이다.
요즈음처럼 경제가 어려운 때에 만약 어떤 일에 투자해서 돈을 벌것을 확실히 믿는다면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라도 투자할 것이다.
만약 제가 오늘 밤 2시에 여기서 나를 만나면 삼만불을 주겠다고 하면, 제 말을 확실히 믿는 사람은 틀림없이 찾아올 것이다. 피곤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초저녁부터 와서 기다릴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참된 믿음은 행위를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행위가 없으면 참 믿음이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 사랑도 행동하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다.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진짜 사랑이 아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면서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말로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인다.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기도도 하고 섬기기도 한다.
모든 민족이 구원받기 원하면 선교를 위해서 기도할 뿐 아니라 헌금도 하고 선교하러 가기도 한다.
마음으로도, 말로도, 행동으로도, 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 의롭다 함도 행동하는 믿음으로 받았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것이 아니냐? 고 반문한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행위 자체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이삭을 바칠 믿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미 아브라함은 이삭이 나기도 전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창 15:7)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이삭을 낳고 그 이삭이 장성한 후에 그 이삭을 제물로 바친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하신 것은 그가 하나님을 철저히 믿었기 때문에 바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어떤 믿음으로 이삭을 바쳤는지 히브리서가 말씀해 주고 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짝이 없는 것이 없다.
히브리서 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부활 신앙으로 이삭을 제물로 바쳤다. 그처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2. 믿음은 행위를 통해서 역사가 일어난다.
약 5: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기도는 믿음을 나타내는 행위다.
하나님이 고쳐 주실 것을 믿는 자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게 된다.
그래서 병들었을 때에 기도하라고 하셨다.
꼭 병 문제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할 때에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라고 했다.
우리는 자신이 기도할뿐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의 기도를 받아야 한다.
단순히 기도를 부탁 할수도 있으나 그 보다는 청하라고 했다.
이는 만나서 함께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당신이 그냥 기도를 부탁하는 것 보다는 당신이 청해서 기도를 받던지
찾아가서 만나서 기도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다.
여기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기름이 치료제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기름이 성령을 가르킨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기름을 바르는 것이 믿음의 한 행위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쳐 주실때도 말씀으로만 고쳐주신 때도 있고
그 몸에 손을 대시므로 고쳐주신 때도 있고
본인으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게 하시면서 고쳐주신 때도 있다.
우리의 기도에도 어떤 믿음의 행동이 필요하다.
  
죄를 서로 고백하면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기도를 해 주는 자나 기도를 받는 자나 다 같이 서로 죄를 고백하면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는 병을 고쳐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실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깨끗게 치료해 주시기 전에 먼저 우리의 마음을 치료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을 말씀 하시는 것이다.
죄가 우리 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수도 있고
죄가 기도의 응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진정 죄를 회개하고 용서 받을 때는 의인의 기도를 할 수가 있게 된다.
엘리야가 우리와 꼭 같은 성정의 사람이었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
우리도 죄를 회개하면 엘리야와 같은 역사하는 힘이 많은 의인의 기도를 할 수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믿음은 행위를 통해서 역사가 일어난다.
지금 우리는 환하게 밝은 전등불 아래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전기가 전등을 밝혀주는 것을 믿고 전기 스윗치를 켰기 때문이다.
전기에 대해서 믿기만 하고 스윗치를 켜지 않았다면 전기도 있고
전등이 있어도 우리는 빛도 보지 못하고 열도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아무리 전기에 대해서 상당한 지식이 있고 발전소는 어떻고 우리 교회 전력을 몇 암페어고 .. 하면서도 전기 스윗치를 켜지 않으면 발전소에서 아무리 강력한 power 의 전기가 흐르고 있다고 해도, 우리 교회 전기 시설이 아무리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고 아무 소용이 없다.
전기에 대 해서 잘 몰라도 스윗치를 켜면 된다.
믿음의 행동은 마치 스윗치를 켜는 것과 같다.
그래서 믿음의 행동이 따를때 역사가 있고 열매가 있고 축복이 잇는 것이다.
  
이와 같이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낼때 기적도 따르고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낼때 축복도 따르는 것이다.
  
당신도 믿음을 활용하라.
행위가 없으면 진정한 믿음이 아니듯이 행위가 없으면 믿음의 역사도 일어날 수 없다.
하나님은 홍해를 건널 때는 먼저 홍해를 갈라서 길을 내신 후에 건너게 하셨지만
요단을 건널 때는 먼저 믿음으로 첫 발을 딛게 하신 후에 길을 내 주셨다.
성경 역사를 보면 이 때 부터는 언제나 믿음이 기적보다 앞섰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에게도 믿음으로 요단을 건너라고 말씀하신다.